우산 없던 날, 빗 속에서 달리기-
그렇게 많은 비를 꼼짝없이 맞은건 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다.
점심시간이 다 끝날 때 쯤 되어서 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맡은 구역을 모두 청소하고 집에 가려고 현관에 나왔을 때는
이미 하늘에서 엄청나게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둘 다 우산은 없고, 집에는 가야겠고, 마을 버스를 탈 200원도 가져오지 않아서
난감해 하며 비 내리는 모양을 보고만 있었다..
- 할 수 없다, 그냥 비 맞고 갈까?
그 말이 시작이 되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교복 블라우스가 젖고, 조끼가 젖고, 치마자락이 젖고, 내리는 비와 웅덩이에서 튄 흙탕물로 운동화가 엉망이 되었다.
뒤에 맨 하늘색 이스트팩 가방이 잔뜩 젖어 새파란색이 되고 단발머리 끝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산을 둥글게 돌아 집 근처 횡단보도에 멈춰섰을 때는 젖지 않는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둘 다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길가에 핀 개나리와 진달래꽃을 따다 젖은 머리를 넘긴 귀에 하나씩 나누어 꽂으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이히히- 하고 바보 같이 웃었다. 제 꼴이 어떤지도 모르고.
그 날 이후 몇 일은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중학교에서의 첫번째 중간고사를 망쳤다.
다 젖어서 너덜너덜해진 책 때문에 불편했고 애써서 필기한 색색의 노트의 글씨가 번져
무슨 글씬지 알아볼 수 조차 없어서 새 노트에 다른 친구 것을 빌려다 베껴쓰느라 한참을 고생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떤 계기로 인해
그렇게 더 못 친해져 서로 안달이었던 그 친구와의 관계도 영원히 끝이 났다.
다시는 안 볼 것 처럼 말했고, 다시는 안 볼 것 처럼 편지를 썼다.
둘이서 쓰던 교환일기가 엉망진창이 되고 상처만 주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다.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서로에 대해 잘 알면 알 수록,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고 아픈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들이붓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때 그 차가운 봄비와 잃어버린 친구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