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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기

할머니의 정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물을 흠뻑 줘야한다, 절대로 화분을 죽여서는 안된다, 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원래 집에서도 잘 안하던 꽃에 물주기, 난 잎사귀 마른 수건으로 한 잎 한 잎 정성껏 닦아주기, 베란다 바닥 청소하기.. 등을 했다. 일단 아침밥 맛있게 차려서 먹고, 부엌 뒷정리와 설거지 해놓고, 세탁물들 싹 모아서 세탁기 돌리고, 집 구석구석 청소랑 걸레질 해놓고, 걸레 빨면서 다용도실 바닥 물청소 하고, 거실 쪽 베란다 a.k.a. 할머니 정원으로 건너왔다.


할머니가 정성껏 키워놓으신 여러개의 화분들. 난도 있고 꽃도 있고 이름모를 커다란 나무들도 있고. 그런데 어??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없었던 난에 꽃이 피었다- 와, 너무 신기했다. 뽀얀 색의 꽃잎. 청초한 자태!


꽃피우기 어렵다는 난인데 늘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예쁜 꽃을 틔운다. 암만 말해도 못 알아듣고 계속 말썽 피우고 속 쓰이게 하는 나같은 애보다 낫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ㅎㅎ 보들보들한 꽃잎사귀에 그려진 촘촘한 결 무늬가 참 예쁘다.


얘는 제라늄 꽃인데 선명하고 투명한 붉은색이 참 예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듯반듯 동글동글 다섯장 짜리 꽃잎!


각각 이름을 잘 모르겠지만 작은 연보라색의 꽃, 그리고 짙은 보라색 나비날개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잎사귀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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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물주고 베란다 바닥 물청소 한바탕 시원~하게 해주고 빨래 다 된 옷들 탁탁 털어서 널어놨다. 방 정리정돈도 싹 해놓고 일주일 새에 벌써 수북해져버린 영수증들을 정리했다. 원래 돈을 막 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돈 아껴쓰고 가계부를 꼭 써야될 것 같다.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기억할 새도 없이 현금이 쏠쏠히 나가서 너무 아깝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한국 사람들 너무 물 펑펑 쓰는 것도 아깝고, 계속 전기 켜놓는 것도 아깝다. 심지어 식품코너에서 시식용으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초록색 이쑤시개랑 물 한 번 먹고 버리는 꼬깔 종이컵도 아깝다; 하도 그런거 공짜로 절대 안주는, 꼭 써야하면 비싼 돈을 내고 쓰는 나라에서 살다와서 그런가보다.. 캐나다가 전기세 물세 워낙 많이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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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어제 사온 책을 마저 읽었다. 매일 일기를 잘 써놔야겠다고 다짐. 정말이지 기록이 전부다. 여유가 있을 때는 이렇게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들으면서 포스팅도 하지만 바쁠 때에는 한 줄 씩이라도 그냥 흘러가는 생각들을 잘 붙잡아둬야겠다. 어지럼증에 먹는 약을 먹어서 그런가 아침에 아홉시까지 잤는데도 하루종일 졸리고 멍한 느낌. 늘 엄마가 시간을 아끼고 세월을 아끼라고 했을 때는 마냥 나에게 시간이 많이 있을것만 같아서 어영부영 쓸데없는 짓 하면서 흘려버린 것도 꽤 되는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더 절박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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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내 인생에 목숨을 걸만큼 이거 꼭 해내고야 말겠어!! 하는 야망이나 비전은 잘 모르겠다. 예전엔 조금이나마 그런거, 알 것도 같았는데 왠지 몰라도 어느 순간 주춤하게 되버린거다. 현실과 높은 꿈과의 간격이, 노력한다고 말처럼 쉽게 좁혀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려서. 요즘 내 스스로 매일 묻는 질문이 그것이다. '너 왜 살아? 왜 여기있어? 너 뭐하냐?' 와 같은, 참으로 원초적인 질문들. 그런 질문들 만큼 원초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되는데 그 질문에 속이 시원해질만큼 대답을 못하고 있어서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그렇지만 늘 생각하고 있는 것은 원칙은 잊지 말자는 것.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나에게 떳떳한 내가 되는 것,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내 주변과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 제대로 된 '인간,' 그리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

어제 사온 책에서 그랬다. 나처럼 평범하고 컴플렉스 덩어리인 사람들이 처음부터 원대한 포부나 야망을 가지고 살 수는 없는거라고. 대신, 매일의 감각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한 마디가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넌 꿈이 뭐야? 라는 질문을 하면 헛소리 같겠지만 꿈을 찾고 있어. 매일. 이라고 대답할거다. 꽃을 틔우기 위해서 지난 일주일간 매일 내리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물을 먹고 온힘을 다했을 난꽃처럼, 나 역시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 언젠가 까지 매일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거다. 제대로 한 번 잘 해보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