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하나 사면 잘 안 잃어버리고 고장도 잘 안내고 오래오래 잘 쓰는 편인 나는, 옷이나 가방, 신발, 심지어 조그마한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잘 바꾸지 않고 정을 들인다. 철 따라 기분 마다 쇼핑을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고, 매일 쇼핑몰을 들락날락하며 이것저것 사모으는 흥미는 더더욱이나 없어서 필요에 의해 그 때 그 때 산다. 쓸데없이 꼼꼼한 부분도 있어서 어떤 한 부분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선뜻 결정을 못 내리는 편이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사면 더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쇼핑몰을 몇 바퀴씩 돌아다니고 발품 팔아서 하는 경우는 드물고, 세일기간에 싸게 사서 이익을 봤거나, 세일이 아닐 때 비싸게 사서 극심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별로 없다. 시간만 들이고 돌고 돌아서 첫번째 봤던 집에서 살 바에야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가기 전에 미리 필요한 것을 떠올리고, 최단 동선으로, 좋아하는 가게에 가서 그것만 딱 사고 냉큼 나오는 남자 같은 스타일이기도 하다.. ㅎㅎ
그러다보니 충동구매? 거의 없다.. 무엇인가 물건을 갖고 싶어서 애달아 한 적도 별로 없고 남이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 부러운 마음 같은 것도 별로 없어서 주변 여자애들이 신기하다고도 한다. 대신, (아주 드물게) 마음에 쏙 드는, 필이 딱 꽂히는 물건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산다. 내가 내내 찾던걸 드디어 발견해서 산거니까 사고 나서도 내가 이걸 과연 잘 샀는지 어쩌는지에 대한 cognitive dissonance 적인 갈등도 별로 없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팔랑대지도 않고 주변 의식 잘 안하고. 가끔 자기가 할 것도 아니면서 꼭 남이 산거에 대해서 나쁜 코멘트를 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처럼 귀찮은 것도 없더라 -_- 사람들 참..
이제껏 이거 갖고싶어 저거 갖고싶어 졸라 본 적도 별로 없다.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한테 뭐 사달라고 조른 적도 진짜 손에 꼽는다. 필요성을 미리 인지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걸 고를 수 있는 좋은 감각을 가진 사람이거나 눈치 채고 척척 사줄 수 있는 센스있는 남자가 있다면 모를까, 남자친구에게 이거사줘 저거사줘 같은 얘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여자애들 보면 이해도 안가고 보는 내가 다 짜증난다. 그렇게 갖고 싶으면 누구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돈 벌어서 사는거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다보니. 보통 그런건 일일히 말하지 않아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면, 남자가 알아서 자발적으로 여자친구 취향에 맞춰서 해주는거 아닌가? 너무 없어서 못쓰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런 노력이나 관심이 없는건 사랑이 아니라 생각해도 무관한 것 같다. 음.. 뭐, 기본적으로 물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사고 싶은 욕심에 일단 카드로 지르고보는 무모한 짓 또한 절대 하지 않으니까.
요즘은 유행이 워낙 빨리 지나가니 굳이 옷이나 가방, 구두 같은 것을 좋은 곳에서 제대로 된, 가격도 비싼 것을 살 필요가 없다고 얘기한다. 어차피 한 철 입고 말 옷인데 뭐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재냐고, 그냥 왠만하면 사는거지, 라고 말한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나한테 하이패션적인 새로운 옷들을 계속해서 사입고 다양한 방법으로 치장하고 다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액세서리도 맨날 바꾸고, 가방과 신발도 매일 새 것, 다른 것으로 하고 다녀야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자친구들을 만나면 머리서부터 발 끝까지 늘 그런걸 평가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격은 싸면서 시시때때로 눈에 들어오는 트렌디한 것들을 여러개 가질 것이냐 유행 타지 않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제대로 된 것 하나를 가질 것이냐에 대한 문제인데, 그 역시도 사람에 맞추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키가 작고 큐트한 것이 어울린다면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렇게 화려하고 특이하고 앞서가는 트렌디한, 날티나는 스타일 보다는 심플하고 기본적인 라인이 어울리는데다, 내 스타일이 아닌 옷은 단 돈 만원을 주고 구매했어도 엄청 아깝다는 후회가 밀려와서. 어차피 마음에 안들고 불편해서 안쓰고 곧 버리게 될거면 이런 싸구려 사지 말고 차라리 맛있는 밥 사먹지 싶고.. 마음에 쏙 들고 잘 어울리는 20만원 짜리가 낫다고 생각한다. 비싼 값을 주고 샀지만 제 값을 하니 별로 아깝단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들어가다보니 나한테 맞는 똑똑 떨어지는 스타일은 더더욱 제대로 된 것을 사야해서, 체형이 급변하는 것을 막아야 오래 즐길 수 있는 단점이 생기고 있다-_-
매일 가지고 다녀도 지루하지 않고, 쓰기 편하게 기능성 까지 갖춰져 있고, 품질도 좋고, 디자인도 마음에 쏙 드는 것으로, 거기다 될 수 있으면 가격도 내 상황과 형편에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을 찾으려니 구매의사가 불끈불끈 솟지 않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주변에 '쇼핑 좀 한다' 하는 사람들도 보면 결국 이래나 저래나 돈 드는건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트렌디한 것들 사서 다양하게 패셔너블하게 잘 입고 스스로 잘 꾸미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작 중요한 자리에 어울릴만한, '있어 보이는' 것이 별로 없어서 급히 또 시간과 돈을 들여야되면 결과적으론 나같이 쇼핑 안하는 애랑 다를게 뭔가 싶어서;
내가 이런 나의 미련스럽기 까지한 소비습관에 대해 얘기하며 그게 무슨 문제냐, 왜 꼭 남 따라 트렌드 따라 피곤스레 살아야 되느냐, 고 열변을 토했더니 내가 참 좋아하는 선생님이 나를 다독이며 그러셨다. 돈을 쓰는 것과 그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가치관, 인생관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물론 누구는 안그렇겠냐만 마음을 터놓는 데에도, 진심으로 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신 '진짜 내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무엇을 했건 무조건 적으로 믿어주고 감싸주고 싶어하는게 무슨 문제겠니.. 결국 남는건 알곡일 뿐인데.. 라셨다. 심지어 배우자를 찾는 문제와도 닿아있어서, 어떤 사람은 어떤 스펙을 가진 어떤 외모의 사람을 몇 명이나 만나봤다는 자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결국 그보다 더 한 사람을 만나 한 번 쓰고 마는 취급을 받으며 인생을 불행하게 산다. 남에게 보이기 좋은, 화려하고 그럴듯해보였는데 정작 들여다보면 싸구려 같은, 놀기 좋고 연애할 때 좋은 놈 말고, 속이 꽉 차있고 생각과 가치관이 너와 잘 맞는, 네가 평생 아끼고 또 너를 평생 아껴줄 단 한 사람을 만나면 되는거니까.. 라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다. 예가 좀 비약적인 것 같지만.
개인의 소비습관이니 인생관, 가치관이니 그런걸 다 떠나서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저 그런 백 개 천 개 보다
진짜 '내 꺼' 하나면 되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