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3주전.
친구랑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출근할 때 입을 정장을 보러 들어간 롯데백화점.
그곳에서 나는 모 유명브랜드의 배색 원피스와 튤립라인 스커트, 그리고 셔링 디테일이 달린 블라우스를 샀다.
그 브랜드의 옷을 샀던 이유는 1. 고급스러웠고 2. 매무새가 괜찮았으며 3. 가격도 '비교적' 나쁘지 않아서였다.
배색 원피스는 너무 짧지 않은 길이와 입었을 때의 라인과 착용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튤립 스커트는 내가 좋아하는 길이보다 좀 짧아서 계단 오르내리거나
왔다갔다하면 신경 많이 쓰이겠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긴 했었다.
살까 말까 한참 고민했지만 같이 코디할 수 있는 벨트가 잘 어울렸고 독특한 디테일이 마음에 들었고
셔링 블라우스는 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착을 해봤었던 거라서 배송을 받기로 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살 당시에는 백화점에서 여러개 산거 치고
35만원 안팎이면 나쁘지 않은거지? 하는 한국돈 개념 없는 외국인-_- 마인드로 쇼핑하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옷을 입어보고 아무리 거울을 비추어보아도
튤립 스커트는 길이가 너무 짧은듯 했다.
입고 나가기엔 다리가 초 날씬하지 않는 이상 많이 부해보였다.
그러니 돈을 갑자기 너무 많이 쓴 것 같기도 하고.. cognitive dissonance 가 심했다.
튤립 스커트는 한 큐에 환불 받아야겠다고 결심.
그리고 그 다음 날,
동생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할게 있다며 찾아봐달라기에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 쇼핑을 하던중
뚜둥..!!!
전날 내가 샀던 원피스와 정말 똑/같/은 제품이 거의 반값에 나와있는거였다.
심지어 색깔이 다른 제품까지 올라와있었다. (매장엔 없었던.. 색깔 다른게 더 예뻤다-_-)
상품 상세 설명 - 길이, 소재, 매무새, 그 원피스만의 독특한 라인 마무리를 봐도 정말 똑같았다.
생일선물 받은 상품권으로 색깔 다른 원피스를 주문하고.
이 원피스도 환불하기로 결심.
그리고 이렇게 되니 그 다음날 배송 받은 셔링 블라우스 마저도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고 그냥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으로
인터넷에 반의 반 값에 올라와있는거 아니야? 같은 생각이 들어서 얘도 환불 결심.
그 다음 날, 회사 점심시간에 우리팀 막내가 항상 옷 사는 단골집 P모 매장에
옷을 바꿔야 된다고 같이 가서 둘러봤는데 이곳 역시 다른 색깔 원피스가
무려 13만원에 걸려있는거였다. 아... 이건 뭐지요.
집에 와서 부랴부랴 영수증을 뒤졌다.
10일 이내에 원상태 그대로 가지고 오면 환불해주겠다고 적혀있네.
주말 밖에 시간이 없어서 아침에 백화점 문 열자마자 그 비를 뚫고 바꾸러 갔다.
혹시나 싶어서 그 날 받았던 롯데백화점 상품권이며 락앤락 사은품까지 죄다 돌려주려고 가져갔다.
그렇게까지 다 가져갔는데 스커트, 블라우스는 다 바꿔주고
갑자기 원피스는 구석구석 뒤집어보고 훑어보더니
오염이 되어있기 때문에 바꿔줄 수 없단다.
이게 뭔 말인지.
입지도 않은 스커트가 왜 오염이 되어있냐고.
보니까 그 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쇼핑백 안으로 물이 몇 방울 떨어졌는데 그게 '오염' 이라고.
원래 상태가 아니고 다시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환불해줄 수 없단다.
(얘기하는 중에 물이 말라서 얼룩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랬더니 더 이상 말 안하더라. -. -;)
게다가 입어본 흔적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안된단다. 그럼 처음부터 새 제품을 꺼내주셨어야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기 전에 많이 입어봤을텐데 그거까지 내가 책임 져야 되는건가??
판매할 때는 그렇게 친절하게 굴더니 이렇게 시비를 걸고..
정 그렇다면 바꿔주는데 나더러 드라이 비용을 내란다. 3만원.
단골 세탁소 가면 반값에 할 수 있는데 내가 하지도 않은 시착 흔적 때문에
3만원을 내고 10만원 짜리 원피스를 환불 받으라는건지. 말이 되냐고.
그럼 고객님이 드라이를 해서 갖다주시던지요, 그러길래 그러마고 했다. 정말 더럽고 치사했다.
전체 판매 취소를 하고 이 스커트에 대해서는 다시 결제를 하는 쪽으로 해결을 하고 나왔다.
(약속 때문에 빨리 나와야했다. 매장에서 실랑이 하고 있는 내 자신도 너무 불편하고 싫었고.)
그리고 드라이 하는 시간 동안에 리턴 데잇이 지나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실히 해주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 혹시나 날짜 지났다고 또 안해준다고 할까봐서.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분위기였다.
너무 서러웠다. 캐나다에서는 내가 영어도 잘 못하는 외국이었을지언정
한 번도 이런 대접은 안받았는데 마치 내가 옷에다 뭐 엄청나게 잘못을 한 것 처럼
똥이라도 묻힌 마냥 아주 불쾌하게 대하고 말투나 억양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한두푼도 아니고 돈십만원 하는 제품과 손님에 대해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다.
회사 워크샵이 있었던 주말은 갈 시간이 없었고 드디어 오늘에서야 드라이 된 옷을 갖다주러갔다.
또 시비걸까봐 일부러 드라이 된 그대로 비닐까지 씌워서 갖다줬다.
지난번에도 한참 얘기했었던 매니저라는 사람이 나와서 환불 확인해주고
약속이 있어서 돌아나와서 백화점을 떠나려는 찰나 갑자기 전화가 한 통 왔다.
'고객님, 방금 환불 받으셨던 매장입니다. 다시 올라와주세요.
드라이 해다 주셨는데 제품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환불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안감이 뒤틀리고 다 찢어지고 너덜너덜 하네요.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 하는 과정에서 잘못된거 같네요.
직접 올라와서 같이 확인해주셔야겠어요.'
이건 또 왠 헛소리인가. 기껏 드라이까지 해다줬는데 왜 환불을 안되고 너덜너덜은 뭐며
한 번에 다 확인하고 해줬어야지 시간 없는데 사람 오라가라마라야?!?!?!
게다가 매니저란 사람의 표현에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안감이 너덜너덜?
아무리 동네 세탁소에서 했기로서니 남의 옷을 다 찢어먹고 너절해진 상태로 드라이비를 받아먹겠니.
확인도 안하고 환불 절차를 밟아준 것도 그렇고. 손님도 없었는데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이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아온거 다 알아서 이런거 잘 못하니까 우습게보고 이러는거 아닌가 싶어서
너무너무 감정도 상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 어떻게 해야되지. 하다
일단 커스터머 서비스에 가서 얘기를 하면 좀 더 기분 상하지 않고 잘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길로 고객 센터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런 식으로 대하는 매니저의 태도, 한 번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점,
그리고 환불건의 여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정말 화가 있는대로 나서 두서 없이 말했는데도 다 알아들었다-_-)
차근차근 상담창구 직원분의 표현으로 정리해주시는데
할 말을 딱딱 하되 희한하게도 화가 좀 가라앉고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찌나 요점만 간단하게 하지만 우회적인 표현으로 진정까지 시켜주면서 ㅋㅋ
어쨌든 잠시 후 그 매장 매니저가 고객 센터로 왔다.
나는 그녀의 태도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몇 번 보았고 방금 전 전화걸 때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톤과 표정으로
제일 싫어하는 고객님~ 고객님~ 의 말투를 쓰고 있는거였다.
자기도 이제서야 봐서 죄송하다, 고객님이 두 번이나 매장을 들르신 점도
드라이를 직접 해다주시는 것도 너무 고맙고 죄송했다.
손님도 계시고 복잡해서 확인을 하지 않고 결제 취소 처리를 했는데
그 부분 역시 자신의 불찰임을 인정한다.
라고.. 하지만 옷을 봐라. 하고 딱 깠는데 진짜 나도 너무 깜짝 놀랐다.
너덜너덜.. 까지는 아니지만 안감 끝부분이 많이 찢어져있었다.
내가 세탁소 갖다줄 때 까지만도 이런 상태가 아니였는데 아마 드라이 클리닝 하면서
이런 일이 왕왕 있다고 하며, 이해한다고 하면서 (왜 갑자기 태도 돌변하는지;)
이런거 알고 계셨나요. 확인하셔야될 것 같아서 전화드린거였어요 라며.
자신의 표현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재차 반복하고.
솔직히 나도 너무 놀랐고 내가 매니저 입장이었어도 충분히 속상하고
본사에서 쪼일 상황도 이해 가고 그런 옷 확인도 안하고 환불 받았으니 가운데서 입장이 곤란했겠지만
고객 센터에다 말하니 태도, 말투, 표정 싹 바꾼게 너무 괘씸해서 끝까지 화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녀 역시 기분 상하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한테 고객님 소리 해가며
죄송하다 미안하다 말하는 상황. 진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도 들고 인생 드럽다 생각도 들었겠지만
내 입장은 얼마나 더 어이가 없는지. 누가 드라이를 해다주냐. 그것도 내가 한 것도 아닌 부분에 대해.
암튼 오늘 뭔가 감정도 상하고 불편한 상황도 겪어봤지만 얻은 교훈은
어떤 것이던지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람들 많이 다니고 복잡한 매장에서
직원이나 매니저와 실랑이를 벌일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고객센터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자는 것.
그 곳에 있는 화술의 달인에게 얘기하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환불절차 잘 마쳤다.
워낙에 그냥 좋게좋게 살자, 가능하면 남한테 싫은 소리 하지말자 주의라고
이제까지 손해를 굉-장-히 많이 보고 살아왔던게 사실이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얘기인데도 못하고 늘 집에 와서 속상해 하곤 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은 알게된 느낌이다.
착하게 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고.
그런데 한국에선 까딱 어리버리하게 보이면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이럴 때는 그냥 적당히 하고 속상해할게 아니라 끝까지 입장을 설명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곧대로, 그리고 상대방 입장도 너무 곤란하지 않게
서로 기분 나쁘지 않고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행동해야겠다.
외국인이지만 결코 어리버리하지 않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