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도 다 지나가고 가을도 끝인 것 같다
그러니까 가벼운 티셔츠에 가디건 하나 걸쳐도
밤까지 끄덕 없던 시간은 다 지나갔다는 얘기.
오늘은 집에 일찍 돌아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얼굴에 팩을 붙인 채로 (아 이건 정말 아줌마들만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내일 입을 푸른 줄무늬 셔츠를 구김 없이 반듯하게 다렸다
살 때는 몰랐는데 소매를 1/3 정도 접어 올리면 조그만 꽃이 그려진 패턴이 나온다는 것과
양 옆 밑단에 레이스가 잔잔하게 붙어있어서 다소 딱딱해보이거나 남성스러워보일 수 있는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에
마지막 소녀스러움을 더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되었다. 하하, 뭔가 귀엽네.
샤워를 하고 체리바닐라 티를 한 잔 우려 마시고
상한 머리카락 잘라내기 프로젝트 제 3탄 - 세 달 째니까 - 를 해서
한결 가벼워진 머리를 조금 말리고 두툼한 외투를 입었다.
뒷뜰로 나가는 문을 열고 나가 계단에 잠시 앉아서 금새 깜깜해진 초겨울의 밤하늘을 보았다.
이 맘 때 쯤의 밤 하늘엔 별이 많이 보여서 좋다.
제법 싸늘해진 공기가 코를 통해 몸에 들어오면 순간적으로 속이 얼어붙는 것 같은 심각한 느낌이어도
한 편으론 시원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인가가 답답한 것이 탁 트이는 느낌이라 참 좋다..
또 든 생각이, 나 답답한게 그렇게 많은가? 스스로 반문..
음.. 이건 좀 유치한 얘기이긴 한데.
바랐던건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이 어느 날 저녁 아무 이유 없이 '어디 좀 갈래?' 해서
약간 이렇게 쌀쌀한 초겨울의 저녁에 별이 아주 많이 보이는 곳으로
야간 드라이브를 시켜주는 것이었다. 운전을 잘 하면 더 좋고,
차에 항상 좋은 음악을 켜주는 센스까지 겸비한 사람이면 더 좋고..
이건 나 혼자만의 바람이고 작은 소망이니 절대 말하지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하며 이런 로망쯤은 가지고 있는 편이 행복하니까-
밑단에 아주 조그만 레이스가 붙어있는 블루 스트라이프의 셔츠를 입는
어느 날 갑자기 별보기 야간드라이브를 꿈꾸는, 마음만은 귀여운 면도 있는 소녀라고.
밤에 바르는 크림을 듬뿍 바르고 번들번들한 피부를 해서 자러간다-